잡지의 시대. 정보가 종이 위에 있던 시절

제4전시실 종이 문명관
[1968~2017]

안녕하세요, 방문객 여러분.
이번 전시실은 냄새가 납니다.

오랜된 종이 냄새요. 익숙하시죠? 헌책방 냄새, 도서관 냄새, 새 잡지의 비닐 포장을 뜯을 때 냄새.
잠깐 그 냄새들을 떠올리면서 들어오세요.

잡지가 세상이었다

1960~1980년대. 배경 설명

첫 번째 진열장 앞에 서셨습니다.

빛바랜 잡지들이 쭉 늘어서 있어요.
<주부생활>, <여학생>, <하이틴>, <선데이서울>, <여성중앙>, <여원>. 지금 보면 낡아 보이지만 이것들이 한때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있었죠.

TV는 있었지만 채널이 몇 개 없었고, 정해진 시간에만 봐야 했습니다. 영화 정보는 영화잡지에서, 요리 정보는 여성지에서, 연예 가십은 주간지에서만 얻을 수 있었어요.

잡지는 정보였고, 유행이었고, 문화였습니다.

1965년에 창간된 <주부생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종합 잡지였어요. 1970년에 중앙일보가 창간한 <여성중앙>은 “전 여성의 진정한 생활잡지”를 표방했습니다. 미국 [패밀리 서클], 일본 [부인구락부]와 기사 교환 계약을 맺을 만큼 당시 기준으로는 국제적인 잡지였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당시엔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잡지 모음

선데이서울, 현관 유리가 깨진 날

1968~1991년

이 방 중앙에 커다란 유리 진열장이 있죠.

안에 빛바랜 선데이서울 창간호가 있습니다. 표지 모델이 연예인이 아닙니다. 당시 조흥은행 창구직원, 19살 이영임 씨예요. 은행에서 소문난 미인을 직접 섭외했거든요.

1968년 9월 22일, 선데이서울이 창간됐습니다. 서울신문에서 만든 성인용 주간지였어요.

창간호는 원래 5만 부를 찍으려다 1만 부를 더 찍어 6만 부를 만들었는데 두 시간 만에 동이 났습니다. 태평로 서울신문사 사옥 앞에 잡지를 사려는 가판 소년들이 몰려 현관문 유리가 깨지는 소동이 벌어졌어요.

지금으로 치면 아이폰 신제품 줄서기보다 더 난리가 났던 거예요.

이후 선데이서울은 20년 넘게 한국 주간지의 대명사로 자리했습니다. 그런데 1987년 언론자유화 이후 경쟁 매체가 쏟아지고, VTR이 대중화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성인잡지 대신 비디오를 빌리기 시작한 겁니다.

1991년 12월, 통권 1192호를 끝으로 폐간됐습니다. 23년이었어요.

영화잡지 황금시대

1984~1998년

이쪽 벽면을 보시면 포스터들이 걸려 있습니다.

브룩 실즈, 소피 마르소, 주윤발, 장국영.

1984년 3월, <스크린>이 창간됐습니다. 한국 최초의 본격 대중 영화잡지였어요. 그 전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미국 잡지를 들고 외국어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내용은 몰라도 괜찮았어요. 유명 스타 사진을 오려서 방 벽에 붙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다 한글로 된 영화잡지가 나왔으니, 그게 그 시대엔 일대 사건이었어요.

출처:한국영상자료원


5년 뒤인 1989년, <로드쇼>가 창간됐습니다. 창간호를 사면 10년 뒤에 상금을 준다는 황당한 약속을 했어요. 무려 1억 원이요. 아무도 그 잡지가 10년을 못 버틸 거라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결국 로드쇼는 9년 만인 1998년에 폐간됐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기회조차 없었어요. 아니면 약속때문에 폐간된걸지도 모르겠네요.

이 두 잡지가 전성기를 이끌 때 젊은 독자들이 용돈을 모아 서점에 달려갔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시절 <스크린>에 컬트 비디오를 소개하는 글을 썼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로드쇼> 편집장이었어요. 훗날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도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였습니다. 한국영화계의 허리를 만들어낸 건 바로 이 종이 잡지들이었어요.

전성기의 절정, 그리고 균열의 시작

1995년~2003년

1995년, 영화잡지 시장에 세 개의 창간호가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씨네21>, <키노>, <프리미어>

<씨네21>은 주간지였어요.
영화 정보를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키노>는 “100년을 기다려 온 그 잡지가 온다”는 도발적인 카피로 창간했어요. 창간 초기 발행부수 5만 부, 판매율 85%의 흑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죠.

시장은 폭발했습니다. <필름2.0>, <무비위크>, <씨네버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은 영화 주간지를 네 종류나 보유한 유일무이한 국가가 됐어요. 잡지 전성기의 정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PC통신이 등장했어요. 영화 동아리가 생겼고, 온라인으로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잡지가 압도적이었지만 균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어요.

2003년 1월, <키노> 93호가 나왔습니다. 갑자기 표지가 흑백으로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눈치챘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그리고 그 해 7월, 통권 99호로 폐간이 선언됐습니다. 100호를 단 한 호 앞두고 말이죠.

폐간 소식이 알려지자 ‘키노키드’들이 사무실 빌딩 앞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습니다. 잡지 폐간에 팬들이 농성을 한 거예요. 그게 키노가 얼마나 특별한 잡지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영화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로드쇼>는 1998년에 이미 폐간했고, <스크린>도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필름2.0>은 2009년 휴간, <프리미어 한국판>도 2009년 폐간.

키노의 죽음은 예언이었어요. 한국 영화잡지 몰락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여성지의 대량 학살

2017년

마지막 전시실입니다.

벽에 부고 기사들이 걸려 있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JTBC플러스가 운영하던 여성지 네 개가 동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여성중앙>, <쎄씨>, <헤렌>, <인스타일>. 1970년에 창간해 47년을 버텨온 <여성중앙>도 그 해 결국 휴간을 선언했어요.

이유는 같았습니다.

“기업이 광고비를 줄일 때 가장 먼저 삭감하는 항목이 잡지 광고였다.”

잡지는 TV와 달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아요. 구독자가 줄면 광고가 줄고, 광고가 줄면 콘텐츠 질이 떨어지고, 콘텐츠가 나빠지면 구독자가 더 줄었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이었어요.

그 사이 인스타그램이 패션을, 유튜브가 영화 리뷰를, 네이버가 육아 정보를 전부 먹어치웠습니다.


출구로 나가시기 전에

잡지가 사라진 이유가 단순히 인터넷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잡지는 원래 ‘정보의 희소성’ 위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정보를 종이 위에 담아 파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희소성이 사라졌어요. 인터넷이 모든 정보를 공짜로, 즉시, 무한히 제공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게 잡지의 진짜 사망 원인입니다.

출구 옆에 낡은 서점 책꽂이가 하나 있습니다.
한 권 집어 펼쳐보고 나가시겠어요?

종이 냄새가 납니다.

유튜브가 오기 전, 우리에겐 판도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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