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오기 전, 우리에겐 판도라가 있었다

제2전시실 디지털 문명관
[판도라TV 2004-2023]

안녕하세요, 방문객 여러분.

제1전시실 싸이월드 잘 보고 오셨나요? 오늘 전시는 좀 다릅니다. 싸이월드가 스스로 자멸한 이야기라면, 판도라TV는 외부에서 죽임을 당한 이야기예요.

억울한 죽음입니다. 미리 말씀드릴게요.

화면보호기 만들던 남자가 미래를 봤다

1996~2003년

첫 번째 유물 앞에 서셨습니다.
낡은 명함 하나가 액자에 걸려 있습니다.

㈜시작시스템즈 – 화면보호기 전문 제작

1967년생, 경희대 기계공학과 출신 김경익. 회사원으로 일하다 1996년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인터넷 브라우저 대신 푸른 바탕화면의 PC통신을 주로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3년여간 다양한 IT 사업에 도전하다가 1999년 e카드 기업 ‘레떼닷컴’을 창업했어요. 그런데 이 무렵 그가 뭔가를 봤습니다.

“사람들이 곧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주고받게 될 거다.”

2003년 기준으로 꽤 대담한 상상이었어요. 당시엔 2분짜리 영상 받으려고 20분 기다려야 했거든요. 유튜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밀었습니다.

세계 최초 타이틀

2004년. 판도라TV 오픈

이 방 조명이 유독 밝죠. 의도한 겁니다. 이 날이 이 전시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거든요.
2004년 10월 25일, 판도라TV가 오픈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UCC 동영상 공유 서비스였어요.
잠깐 멈추겠습니다.

유튜브가 언제 생겼는지 아세요? 2005년 2월입니다. 구글이 인수한 건 2006년이고요.

판도라TV CI
판도라TV CI

판도라TV는 유튜브보다 4개월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벽에 당시 창업자 인터뷰가 걸려 있습니다. 2006년에 한 말이에요.

“크리에이터가 광고 수익을 나눠 갖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유튜브가 이 수익 공유 정책을 본격 시행한 건 2012년이에요. 판도라TV 창업자는 6년 먼저 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월 페이지뷰 3억 5천만 건

2005~2008년. 대한민국 동영상 1위

전성기 전시물들입니다. 진열장 안을 보시면 당시 서비스 화면이 있습니다. 채널, 업로드, 댓글. 지금 유튜브 구조랑 똑같습니다. 당연하죠, 판도라가 원조니까요.

판도라 tv 메인 캡쳐
판도라 tv 메인 캡쳐


위 사진이 바로 당시 판도라TV 메인화면입니다. 지금 보면 유튜브 초기 화면과 구조가 거의 동일해요.

창업 1년 만에 콘텐츠 12만 건을 확보했고, 2006년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습니다. 그 해 월간 총 페이지뷰는 3억 5,100만 건이었어요. IT업계 관계자는 “2008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판도라TV의 영향력이 유튜브보다 컸고, 국내 UCC 유명인들도 대부분 판도라TV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고 회고합니다.

지금의 유튜버가 그때는 판도라TV 스타였어요. 1인 미디어 문화의 원조가 판도라TV였습니다.

실리콘밸리도 알아봤어요. 2006년 알토스벤처가 투자주간사로 참여한 컨소시엄으로부터 600만 달러, 2007년 DCM으로부터 1,000만 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레드헤링이 선정한 2007년 글로벌 100대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어요.

이 시기 판도라TV는 유튜브의 라이벌이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요.

4개 언어로 세계를 향해

2008년

2008년 3월 KMPlayer를 인수하고, 4월에는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4개 언어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명실상부한 세계 진출 선언이었어요.

판도라tV 글로벌
판도라tV 글로벌


KMPlayer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동영상 재생기였습니다. 플랫폼과 플레이어를 동시에 갖추는 전략이었죠.

숫자만 보면 최전성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방 조명이 왜 점점 어두워지는지 눈치채셨나요?
바로 이 시기에, 무언가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거든요.

세 개의 칼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2009년. 사형선고

2009년, 판도라TV를 향해 세 가지가 동시에 덮쳤습니다. 2009년 4월 인터넷 실명제, 2009년 7월 23일 저작권 삼진아웃제, 그리고 통신사 망 사용료 문제였어요.

하나씩 설명해드릴게요.

첫 번째 칼 – 인터넷 실명제

동영상을 올리려면 실명 인증을 해야 한다는 법이었습니다. 유튜브는 서버를 다른 나라에 두고 있어서 이 규제를 벗어날 수 있었어요.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한 번 떠나간 이용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칼 – 저작권 삼진아웃제

저작권 위반 영상을 세 번 올리면 계정이 정지되는 제도였어요. 이 법은 글로벌 사업자를 배제한 채 국내 사업자들에게만 적용됐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어요. 판도라TV 점유율 42%→4%, 다음TV팟 34%→8%, 유튜브 2%→74%.

판도라TV가 규정대로 영상을 지우는 동안, 유튜브엔 그냥 다 올라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칼 – 망 사용료

유튜브는 해외기업이라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았지만 판도라TV는 높은 망 사용료를 내야 했습니다. 비용을 감당하려고 광고를 늘리자 이용자들이 유튜브로 떠났고, 2009년 판도라TV가 저작권 위배 영상을 대거 삭제하자 유튜브 망명 현상은 가속화됐어요.

2009년 한 해 유튜브 국내 점유율은 2%에서 74%로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판도라TV는 42%에서 2%로 감소했고요.

광고 늘리면 유저 떠나고 → 유저 떠나면 수익 줄고 → 수익 줄면 망 사용료 못 내고 → 서비스 품질 떨어지고. 이 악순환이 10년간 반복됐습니다.

벽에 걸린 숫자판 보이시죠?

2009년 이전2009년 이후
판도라TV 42% 2%
유튜브 2%74%
국내 점유율

같은 링에서 한 선수는 글러브를 끼고, 한 선수는 맨손으로 싸운 결과입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1~2022년

판도라TV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뭔가를 시도했어요.

판도라 TV 화면캡쳐
판도라 TV 화면캡쳐


2014년 1인 미디어 프로그램 ‘아이앱’, 2015년 모바일 개인방송 ‘플럽’을 출시했지만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습니다. KMPlayer 앱은 구글 플레이 2014년 올해의 앱에 선정될 만큼 선전했지만, 그건 동영상 플랫폼이 아니라 재생기 이야기였어요.

사용자에게 불편한 광고, 액티브X 활용, 모바일 시장 재편에도 대응이 늦었다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타이밍이 항상 반박자 늦었어요. 유튜브가 이미 그 자리를 점령한 뒤였거든요.

서비스 종료

2023년 1월 31일

마지막 전시물입니다. 정면에 공지문이 걸려 있어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여러 대외적인 환경 변화와 수년간 지속된 수익성 악화로 인해 서비스 종료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

서비스 종료와 함께 이용자의 모든 데이터는 파기됐습니다.

유튜브보다 먼저 시작해서, 유튜브보다 먼저 끝났습니다.
18년이었습니다.


출구로 나가시기 전에

판도라TV는 실력이 없어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보다 빨랐고, 아이디어도 앞섰고, 실리콘밸리도 인정했어요.

망한 이유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국내 기업에만 적용된 실명제, 국내 기업에만 적용된 삼진아웃제, 국내 기업에만 부과된 망 사용료. 유튜브는 한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고, 그 사이 모든 유저를 가져갔습니다.

물론 판도라TV도 완벽하지 않았어요. 광고 과다, 모바일 전환 지연, 액티브X 집착.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같은 조건에서 싸웠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출구 옆 질문 카드가 있습니다.

“규제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유튜브 대신 판도라TV를 쓰고 있었을까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소셜 네트워크 싸이월드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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