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현대백화점 이전에 우리는 여기서 쇼핑했다

제5전시실 소비 문명관
[미도파·뉴코아·그랜드, 1933~2025]

안녕하세요, 방문객 여러분.

혹시 어릴 적 부모님 손잡고 백화점 간 기억이 나시나요?
에스컬레이터가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지하 식품관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와 붐비는 사람들과 반짝이는 조명.

그 백화점이 오늘 전시의 주제입니다.

명동의 기억, 미도파 백화점

1933~2002년

첫 번째 진열장 앞에 서셨습니다.

흑백사진 하나가 걸려 있어요. 1975년 크리스마스, 명동 미도파 백화점 앞 풍경입니다. 롯데백화점이 생기기 4년 전입니다.

미도파 백화점


미도파의 역사는 꽤 깁니다.
1933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세운 조지야백화점이 그 시작이에요. 해방 후 귀속재산이 되어 우여곡절을 겪다가 미도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1969년 대농그룹이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특이합니다. 미도파(美都波).
도레미파에서 따온 게 아니에요. 메트로폴리탄의 한자식 표기로, ‘아름다운 도시의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센스있는 이름이죠?

1979년 롯데백화점이 소공동에 들어서기 전까지 미도파는 신세계와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백화점이었습니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명소였어요. 1975년에는 국내 백화점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했습니다.

그리고 미도파 배구단.
184연승이라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에요. 조혜정, 박미희, 김화복. 국가대표를 싹쓸이한 그 팀이 미도파 소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백화점이었는데 왜 박물관에 있을까요?
이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미도파는 당시 명동 최고 입지에 자리한 백화점이었기에 부동산 가치만 봐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그걸 눈여겨본 신동방그룹에서 1996년 12월 부터 미도파 주식을 꾸준히 매수했어요. 여기에 홍콩 증권사인 페레그린과 합작해 만든 동방페레그린증권을 통해 경영권 장악을 시도했습니다.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미도파는 비싼 값에 자사주를 대거 사들였어요. 경영권은 지켜냈지만 이미 곳간이 텅 비어버렸어요.

거기에 1997년 IMF가 왔습니다. 빈 곳간으로 외환위기를 버티는 건 불가능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소속 그룹인 대농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무너지자 미도파는 9,000억 원에 달하는 보증 폭탄을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결국 1998년 3월, 최종 부도.

롯데 영플라자
출처 : 더 비즈


2002년에 롯데쇼핑이 인수했고, 2003년 롯데 영플라자로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명동 미도파 자리에 지금 롯데 영플라자가 있는 게 그 흔적이에요.

69년의 역사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강남의 신흥 강자, 뉴코아

1980~1997년

뉴코아의 출발은 1980년, 한신공영이라는 건설회사의 상가사업부가 서초구에 세운 뉴코아쇼핑센터였습니다. 강남이 막 개발되던 시절이에요. 논밭이 아파트로 바뀌고, 인구가 밀려들고, 소비가 폭발하던 그 시기에 뉴코아는 딱 맞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지금의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옆입니다.

뉴코아 백화점


1985년 백화점으로 정식 전환, 이후 수원, 과천, 부천, 인천까지 전국으로 지점을 확장했어요. 1996년엔 재계 3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건설회사 상가에서 시작해 16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오른 거예요.

강남점 전성기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그랜드백화점 강남점과 함께 강남 3대 백화점으로 불릴정도 였으니까요.

뉴코아가 부도를 낸 1997년까지 이 회사엔 제대로 된 전산망이 없었습니다. 재계 27위 기업인데 말이죠. 지점을 낼 때도, 투자를 결정할 때도 오직 오너 혼자 머릿속으로 경영 판단을 내렸어요.

무리한 지점 확장을 이어오던 중 IMF가 왔습니다.
막대한 부채와 외환위기가 한꺼번에 터졌어요. 1997년 11월 부도신청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백화점 1층에 패스트푸드점까지 들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백화점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1층은 명품과 화장품 자리였거든요.

2003년 이랜드가 인수했고, 뉴코아라는 이름은 법인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강남 고속터미널 역 근처에 뉴코아아울렛이 있는 게 그 흔적이에요. “뉴코아 아울렛”. 백화점이 아닙니다.

강남패션 1번지, 그랜드

1986~2025년

이 방이 오늘 전시에서 가장 최근 이야기입니다.

마지막까지 버틴 백화점이죠. 2025년 3월 9일.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1986년 강남 대치동에 첫 문을 연 이후 39년 만이었어요.

그랜드백화점은 1990년대 강남에서 나름 잘나갔습니다. “강남패션 1번지”라는 광고 카피를 유행시켰고, 현대백화점, 삼풍백화점과 어깨를 나란히 했어요. 전성기엔 백화점, 아울렛, 대형마트까지 8개 점포를 운영했습니다.

그랜드 백화점
출처 : 땅집고


잘나가던 그랜드는 1997년 IMF를 맞으며 심각한 자금난에 빠집니다. 결국 본점이었던 강남점을 2000년 롯데쇼핑에 통째로 매각했고, 지금의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본점을 판 것은 심장을 내준 거나 마찬가지였죠.

이후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 점포들을 하나씩 롯데, 이랜드에 팔았어요. 마지막으로 남은 게 일산점이었습니다. 1996년에 문을 열어 29년을 버텼어요.

업계에선 이걸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빅3 아닌 백화점이 이 시대에 29년을 살아남은 건 정말 드문 일이었거든요.

2025년 3월 9일, 마지막 문을 닫으며 그랜드라는 이름의 백화점은 이제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습니다.


출구로 나가시기 전에

세 백화점의 결말이 전부 달랐어요.

미도파는 적대적 M&A와 IMF에 허망하게 무너졌고, 뉴코아는 무리한 확장의 대가를 치렀고, 그랜드는 가장 오래 버티다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이 셋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건물은 아직 있습니다.
미도파 명동점 자리엔 롯데 영플라자가, 뉴코아 강남점 자리엔 뉴코아아울렛이, 그랜드 강남점 자리엔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있어요.

간판만 바뀌었고, 건물은 남아 있습니다.
사라진 게 건물이 아니라 이름뿐이죠.

출구 옆 질문 카드가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갔던 백화점 이름이 기억나시나요?”

생맥주와 캔맥주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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