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대규모 소셜 네트워크 싸이월드의 멸망과 근황

제 1 전시실 디지털 문명관
[싸이월드 2000 – 2019]

안녕하세요, 방문객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을 안내할 도슨트입니다. 

오늘 감상하실 작품은 [싸이월드] 입니다. 제1전시실 디지털 문명관의 메인 컬렉션으로, 2019년에 수집된 유물이죠. 보존상태는 음.. 솔직히 말씀드려 썩 좋진 않습니다. 데이터 대부분이 소실됐거든요.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겠습니다. 자, 그럼 천천히 들어오시죠.

논문 주제가 창업이 된 사연

1999년, 카이스트 대학원 동아리방

첫 번째 유물 앞에 서셨습니다.

여기 보시면 오래된 신문 스크랩이 하나 있습니다. 1999년 9월 10일자 경향신문입니다. 헤드라인을 읽어드릴게요.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사이버 사교 무대. 개인 인맥 넓혀준다’

이게 싸이월드의 첫 번째 언론 보도입니다. 카이스트 대학원 전자상거래 동아리 학생들이 논문 주제를 고르다가 갑자기 창업을 해버렸어요.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 하나로요.

꽤 낭만적이죠?
근데 처음엔 아무도 안 썼습니다. 당연하죠. 친구가 없는 SNS를 누가 씁니까. 당시 잘나가던 건 프리챌이었어요. 커뮤니티 가입자 1,000만을 찍은 공룡이었습니다. 싸이월드는 그 옆에서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어요.

전시물 하단에 작은 메모가 하나 붙어 있죠? 큐레이터 노트입니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소셜 네트워크가 논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당시 누구도 몰랐다.”

적의 실수가 만든 기회

2002년, 프리챌 유료화 선언 직후

이 작품은 좀 특이합니다.
싸이월드가 만든 게 아니에요. 프리챌이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2002년, 당시 1위였던 프리챌이 갑자기 유료화를 선언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무료 유튜브가 내일부터 월 2만 원이라고 선언한 것과 같아요. 유저들이 폭발했습니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싸이월드를 찾았습니다. 싸이월드는 공짜니까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반사이익으로 유저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갑자기 트래픽이 폭증하니까 서버가 맨날 터졌습니다. 접속하면 절반은 먹통이었어요. 욕은 엄청 먹었지만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어요.

대안이 없었거든요.

전시물 옆 모니터에 당시 유저 반응 아카이브가 있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또 서버 터졌냐”, “이게 뭐냐”는 글이 대부분인데요. 그러면서도 다음 날 또 접속했습니다. 이 시기의 싸이월드는 욕먹으면서 크는 플랫폼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런 플랫폼들이 있죠.

사이버 화폐의 원조, 도토리

2003~2009년, 전성기

자, 이제 메인 전시실입니다.

들어오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이 공간이 오늘 전시의 핵심입니다. 조명도 가장 밝고, 유물도 가장 많습니다.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하면서 서버가 안정됐고, 네이트온 메신저와 연동이 됐습니다. 네이트온에 로그인하면 아이디 옆에 작은 집 모양이 하나 떴어요. 그걸 누르면 바로 싸이월드로 연결됐습니다.

진열장 안을 보시면 당시 유물들이 있습니다. 미니미, 미니룸, 도토리 충전 영수증. 네, 실제로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상품권. 당시 편의점에서 문화상품권을 사서 도토리로 환전하는 게 10대들의 주요 경제활동이었거든요.

숫자로 보시겠습니다.

2004년, 한 해에만 가입자 1,000만 돌파.
2009년, 4,000만 명.
당시 한국 인구가 4,900만이었으니까 노인과 아기 빼면 사실상 전 국민이 미니홈피를 하나씩 갖고 있었어요.

도토리 연간 수익, 1,000억 원.

삼성경제연구소가 2004년 히트상품으로 싸이월드를 선정했습니다. CNN이 “한국의 앞서가는 IT문화”라고 소개했어요.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가 배우러 직접 한국에 왔습니다.

네, 그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 맞습니다.

해외 진출, 혹은 8개국 동시 실패

2004~2011년, 글로벌 도전관

복도를 건너시면 작은 별관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글로벌 도전관.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방의 공식 명칭은 “실패의 방”입니다.

잘 나가던 싸이월드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대만, 베트남까지 8개국에 진출했어요. 도토리라는 이름 그대로 갖고 갔고, 미니홈피 디자인도 똑같이 갖고 갔습니다. 현지화를 거의 안 했어요.

미국에는 마이스페이스가 있었고, 일본엔 믹시가 있었습니다. 이미 선점된 시장이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국 사람들은 방 꾸미기에 돈을 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회사는 왜 내 방을 꾸미는 데 돈을 받지?” 감각 자체가 달랐어요.

그렇게 베트남 빼고 전부 철수를 하게 됩니다.

창업자가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라별로 다른 서비스를 만들려 했던 것, 끝내 한국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벽면에 8개국 철수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동시에 무너졌어요.

글로벌 공략이 아니라 글로벌 철수였습니다.

아이폰이 왔다

2009~2011년, 분기점

자, 이 방이 오늘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2009년, 한국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아이폰이 출시됐습니다. KT를 통해서요. 사람들은 PC가 아닌 손바닥 위에서 모든 걸 하기 시작했어요.

싸이월드는 이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아이폰 앱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이 가장 타격이 크다고 봐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SK그룹 논리였습니다. 아이폰은 어디 폰이죠? 네 바로 KT 폰이었거든요. SK 계열사인 싸이월드가 KT 아이폰용 앱을 만드는 게 그룹 내부에서 껄끄러웠던 거예요. 내부에서 모바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SK텔레콤 문자 수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묵살됐습니다.

플랫폼의 미래를 그룹사 매출표가 결정하고 있었어요.

그 사이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열리는 페이스북 앞에서, PC로 접속해야 하는 싸이월드는 순식간에 구닥다리로 보이기 시작했죠.

2만 원짜리 결말

2019년 10월, 최후

마지막 전시실입니다.

들어오시면 정면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있습니다. 텅 빈 흰 화면입니다. 접속 불가 화면이에요.

2019년 10월의 어느 날, 싸이월드에 갑자기 접속이 안 됐습니다.

해킹? 서버 폭발? 아니었어요.

도메인 연장을 깜빡한 겁니다.

cyworld.com 도메인을 갱신하는 데 드는 돈은 2만 원 남짓. 그 2만 원이 없어서, 혹은 그 2만 원을 내는 걸 잊어서 3,200만 명의 추억이 담긴 사이트가 문을 닫았어요.

이후 내부 사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직원 임금 체불, 서버 비용 미납, 국세청의 사업자등록 직권 말소, 자체 개발한 암호화폐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마지막 시도까지.

결국 2020년 6월, 공식 폐쇄되었습니다.


출구로 나가시기 전에

오늘의 작품 설명 어떠셨나요?

싸이월드는 실력이 없어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보다 먼저 만들었고, 더 정교했고, 마크 저커버그가 배우러 왔어요. 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기업 논리가 플랫폼 논리를 이겼고, 성공이 혁신을 멈추게 했고, 추억은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재기를 시도할 때마다 “그 시절 감성”만 팔았어요. 향수는 한 번 클릭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매일 접속하게 만들 수는 없거든요.

박물관 출구 옆에 방명록이 있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명록처럼 생겼어요.

한 줄 남기고 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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