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의 혁명, 러닝화의 역사
지난 26일 런던마라톤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42.195km의 ‘2시간의 벽’을 무려 2명이나 달성했다. 이 대단한 기록의 보유자는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와 에티오피아의 요미프 케젤차이다.
사웨는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케젤차이는 1시간 59분 41초로 그 뒤를 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전설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9년 특수 조건 비공인 레이스에서 1:59:40.2를 기록한 적 있지만, 공식 레이스에서 2시간 벽을 깬 건 인류 최초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사웨의 신발도 큰 주목을 받는다.
사웨는 아디다스 슈즈를 착용했고, 이는 나이키에 대한 아디다스의 승리로도 해석됐다. 두 발이 지면을 박차는 그 찰나마다, 신발은 단순한 보호 장비가 아니라 기록 그 자체의 일부가 됐다. 러닝화가 인간의 한계와 함께 달려온 역사는 사실 마라톤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드라마틱하다.
맨발에서 가죽까지, 마라톤의 탄생과 초기 러닝화
마라톤의 기원은 기원전 4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병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의 전투 승전보를 아테네까지 전하기 위해 약 40km를 달렸다는 전설이 그 시작이다. 이 이야기가 현대 스포츠의 종목으로 부활한 건 1896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당시 거리는 지금의 42.195km와 달랐지만, 맨발이거나 얇은 가죽 샌들을 신은 선수들이 자갈길을 달렸다.
초기 러닝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사실 러닝화가 아니었다. 일반 가죽 구두나 얇은 캔버스 운동화가 전부였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현재의 42.195km가 공식 거리로 확정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발 안에 양배추 잎을 넣거나, 두꺼운 양말을 겹쳐 신는 방식으로 버텼다.
전환점은 1920년대에 찾아왔다. 독일인 아디 다슬러가 운동화 밑창에 스파이크를 박아 선수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아디다스의 시작이 됐다. 그의 형 루돌프는 갈라서서 푸마를 세웠다. 두 형제의 라이벌 관계는 스포츠 신발 산업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불화로 남아있다. 이 시기 러닝화의 핵심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발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

나이키의 등장과 쿠셔닝 혁명
1960년대까지도 러닝화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달리기는 전문 선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1972년, 빌 바우어만 오리건대 육상 코치와 그의 제자 필 나이트가 나이키를 창업하면서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우어만은 아내의 와플 메이커에 고무를 부어 밑창을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이 ‘와플 솔’은 그립력과 경량화를 동시에 잡으며 러닝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같은 시기, 미국 전역에서 조깅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달리기가 건강을 위한 취미로 대중화되자 러닝화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에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등장했다. 나이키 에어 시리즈는 충격 흡수 기능을 극대화해 일반 러너들의 무릎을 보호하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러닝화는 이제 퍼포먼스 도구인 동시에 패션 아이템이 됐다.
1990년대에는 아식스, 미즈노, 뉴발란스, 브룩스 등 다양한 브랜드가 기술 경쟁을 벌이며 시장이 더욱 정교해졌다. 발의 아치를 지지하는 모션 컨트롤 기술, 회내를 교정해주는 안정화 기술 등이 속속 등장했다. 러닝화는 발의 특성에 따라 세분화된 제품군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2017년, 카본 플레이트와 슈퍼슈즈의 등장
현대 러닝화 역사에서 2017년은 분수령이다. 나이키가 ‘브레이킹2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간의 마라톤 2시간 벽 돌파를 목표로 개발된 신발, 나이키 베이퍼플라이였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기존보다 훨씬 두껍고 반발력이 강한 줌X 폼, 그리고 그 사이에 삽입된 탄소섬유 플레이트. 플레이트가 발의 굴곡에 저항하며 스프링처럼 에너지를 되돌려 주는 원리였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카본 플레이트 슈즈는 러닝 이코노미를 최대 4~5% 향상시켰다. 마라톤에서 4%면 약 5~6분 차이다. 세계 기록을 바꿀 수 있는 수치였다. 실제로 이후 마라톤 세계 기록은 연달아 경신됐고, 기록 단축의 상당 부분은 신발의 공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술 도핑’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은 결국 규정을 손봐 밑창 두께 상한선을 40mm로 제한하고 공인 레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발 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기준 내에서도 기술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러닝화의 미래
오늘날 러닝화 시장은 거대하다. 전 세계 러닝화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195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하며, 2035년에는 305억 달러(약 42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에서도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 시장이 특히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 시장은 2034년까지 연평균 10.1%의 성장률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처음에는 엘리트 선수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슈퍼슈즈가 이제는 일반 러너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카본 플레이트 슈즈를 착용한 세계 기록 보유자와 같은 기술을 신는다는 열망이 강력한 마케팅 내러티브를 형성하며, 이 신발들은 더 이상 전문가만의 제품이 아니라 진지한 취미 러너들 사이에서 인기 아이템이 됐다.
기술 혁신의 방향은 더 다양해지고 있다. 스마트 센서 내장, 맞춤형 폼 소재,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재활용 소재 적용 등이 차세대 키워드로 부상 중이다. 카본 플레이트뿐 아니라 스마트 센서와 맞춤 핏이 러닝화 산업을 이끄는 주요 트렌드로 꼽힌다.
브랜드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번 런던마라톤에서 나이키가 아닌 아디다스 신발을 신은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은 상징적이다. 나이키가 카본 플레이트 기술로 시장을 선점했지만, 아디다스, 아식스, 온러닝, 새로 등장한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슈퍼슈즈 전쟁’은 이제 막 본격화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