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방에 갇히면 뇌에 무슨 일이 생길까?

당신에게 한 가지 극단적인 제안을 해보겠다.
벽도 흰색, 바닥도 흰색, 천장도 흰색. 침대도, 옷도, 식판도, 심지어 밥까지 전부 흰색. 창문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소리도 없는 흰색 방에 당신을 가두는 것이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음, 좀 지루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아직 뇌를 너무 모르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뇌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15분~수 시간~수일장기간
시각 착란 시작시간 감각 붕괴환각·정체성 혼란PTSD·우울증 위험

당신이 방에 갇히고 15분 후

가장 먼저 시작되는 건 눈이다.
온통 흰색이고 그림자 하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서서히 패닉에 빠진다. 이걸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라고 부르는데, 독일어로 ‘전체 영역(whole field)’을 뜻한다. 실험 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현상이다.

실험으로 확인된 사실 : 균일한 흰색 빛으로 가득 찬 시야를 유지하면 단 몇 분 만에 뇌가 밝기가 변하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어서 잔상, 기하학적 도형, 색 번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뇌가 이러는 이유가 있다. 우리 뇌는 변화와 대비를 먹고 산다. 배경과 사물이 다르니까 사물을 인식하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니까 시간을 느낀다.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환경이 펼쳐지면, 뇌는 “이 데이터로는 도저히 작업을 못하겠는데?” 라며 멋대로 정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없는 색깔을 보고, 없는 소리를 듣는다. 일종의 뇌의 창작 활동이다. 물론 당신이 원하는 창작 활동은 아니다.

시간 이미지

시간이 사라진다

두 번째로 무너지는 건 시간 감각이다.
창문이 없으니 해가 뜨고 지는 게 보이지 않고,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사건이 없다. 뇌는 시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을 엮어서 ‘추론하는’ 것인데, 사건 자체가 없으면 시계가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도호쿠 대학의 연구(1964)에서 48시간 감각 차단 실험을 진행한 결과, 참가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지거나, 반대로 10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지는 식이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시계가 완전히 고장나버리는 것이다.

환각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진다.
시각적 자극이 차단되면 뇌는 스스로 이미지를 ‘업로드’하기 시작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완전한 감각 차단 환경에서는 정상인도 단 15분 만에 환각과 유사한 지각 경험을 한다. 빛의 번쩍임, 색상, 기하학적 패턴이 먼저 보이고, 시간이 길어지면 목소리가 들리거나 복잡한 장면이 펼쳐진다.

뇌과학적으로 : 뇌는 패턴을 인식하려는 욕구가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패턴을 만들어낸다. 화성 암석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아포페니아)과 같은 원리다. 뇌는 그냥 쉬는 법을 모른다.

이 현상이 실제로 얼마나 극단적으로 쓰였냐면, 이른바 ‘화이트 토처(White Torture)’라는 이름으로 심문 기법에 활용됐다. 이란 등지에서 정치범을 흰 방에 가두고 흰 옷을 입히고 흰 쌀밥을 흰 그릇에 담아 먹이는 방식으로 수 주간 구금하는 것이다. 신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폐가 쉬웠지만,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것이 신체적 고문보다 더 심각한 장기 심리적 손상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하다.

오묘한 그림

희미해지는 ‘나’

가장 기이한 단계는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다. 인간은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나’라는 감각을 유지한다. 거울을 보고, 사람과 대화하고, 내 목소리가 벽에 반사되는 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피드백이 사라지면 뇌는 서서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잃기 시작한다. 공간이 흰색으로 균일해지면 내 몸과 배경의 경계조차 모호해질 수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도널드 헤브(Donald Hebb)는 1950년대에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감각 차단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돈을 받는 조건이었음에도 대부분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나왔다. 흰 방보다 돈이 좋아도, 뇌가 버티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히 하면 좋은 것 아닌가?

흥미롭게도, 통제된 환경에서의 단기 감각 차단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도 존재한다. 부유식 탱크(flotation tank), 즉 소금물이 가득한 완전히 어둡고 조용한 욕조에서 1시간 정도 떠 있으면 스트레스 감소, 창의적 사고 향상, 명상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는 이것을 “약 없는 환각”에 비유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30분은 명상, 3일은 고문이다. 또한 뇌는 지루함을 못 견딘다.

인간의 뇌는 자극을 처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자극을 갈망하는 기관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몸이 자기 근육을 에너지로 쓰듯, 감각 입력이 없으면 뇌는 자기 자신을 원료 삼아 이미지를 만들고 소리를 만들고 현실을 편집한다.

앞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의와 타인에 대한 배려는푼돈을 투자해 목돈으로 돌려받는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