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드는 그 아쉬운 마음, 충분히 알 것이다.
분명 충분히 돌아다녔는데, 뭔가 덜 봤다는 느낌이다. 3박 4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다. 그래서 ‘한 달 살기’가 뜨는 거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 카페를 단골처럼 드나들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끔 산책하다가 길도 잃어보는 것. 관광이 아니라 ‘잠깐 살아보기’다.
문제는 어디서 하느냐다. 용기 하나로 아무 나라나 가면 된다는 말은 반만 맞다. 언어 장벽, 비자 문제, 터무니없는 집세, 낯선 의료 체계까지, 준비 없이 뛰어들면 낭만이 아니라 고생만 하게 된다. 이왕이면 진입 장벽이 낮고, 생활비는 합리적이며, 막상 살아보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곳을 골라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추려낸 다섯 나라다.
말레이시아

한 번도 해외 장기 체류를 해본 적 없다면,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한국 여권으로 90일 무비자, 영어 통용, 콘도 중심의 주거 문화.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미 합격점이다.
쿠알라룸푸르 기준,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가 딸린 콘도를 월 100만~180만 원 선에서 구할 수 있다. 서울 웬만한 오피스텔보다 낫다. 그랩(Grab) 앱 하나면 이동도, 음식 배달도 해결된다. 현지 식당에서 한 끼에 3~4천 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동남아 특유의 습하고 더운 날씨는 각오해야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한 연습 장소가 없다.
태국

오래전부터 외국인 장기 체류자들이 터를 잡아온 곳답게, 태국의 한 달 살기 인프라는 이미 성숙해 있다. 에어비앤비부터 월세 콘도, 고급 리조트까지 숙소 선택지가 넓고, 그랩과 볼트 앱이 잘 돌아가서 이동에 어려움이 없다.
방콕은 번화하고 자극적이다. 매일 새로운 게 있고, 지루할 틈이 없다.
반대로 치앙마이는 결이 다르다. 고산지대 특유의 서늘한 공기와 느린 리듬, 오래된 사원과 로컬 시장이 공존하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치앙마이를 몇 번이고 다시 찾는다. 방콕이든 치앙마이든 둘 다 서울보다 생활비가 저렴하다는 건 공통이다. 단, 방콕의 교통 체증과 대기질은 감수해야 할 트레이드오프다.
스페인

유럽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꾼다면 스페인은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90일 무비자 체류 가능, 온화한 기후, 발달된 대중교통, 풍부한 먹거리. 신선한 재료로 만든 타파스를 접시째 사도 가격이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다.
바르셀로나는 아름답지만 중심부 집세가 만만치 않다.
한 달 살기 실속파들이 선택하는 건 외곽이나 발렌시아, 말라가 같은 도시들이다. 지중해를 끼고 있고, 물가도 낮으며, 현지인 비율이 높아 진짜 스페인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다만 영어 사용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라, 기본적인 스페인어 회화 몇 마디는 챙겨 가는 게 좋다. 길 잃었을 때 말이라도 통해야 낭만이 된다.
포르투갈

유럽권 한 달 살기 입문지를 꼽으라면 포르투갈이 단연 앞에 선다.
90일 무비자, 영어 소통 가능에, 치안도 안정적이다. 거기에 코로나19 이후 리스본이 디지털 노마드의 거점으로 주목받으면서, 국가 전체가 외국인 장기 체류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갖춰가고 있다.
다만 리스본은 최근 인기가 많아지면서 집세가 꽤 올랐다. 실속을 챙기고 싶다면 포르투, 카스카이스, 브라가로 눈을 돌리길 권한다. 특히 포르투는 강변 풍경과 아줄레주 타일 건물, 오래된 골목이 어우러진 곳으로, 리스본보다 조용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머무는 내내 “여기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도시다.
대만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한 달 살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대만이 빠질 수 없다. 인천에서 타이베이까지 직항으로 세 시간 남짓으로 짧다. 인천-타이베이, 김포-송산, 부산-가오슝 등 직항 노선도 다양하게 운항 중이라 이동 자체에서 오는 피로가 거의 없다.
생활비 측면에서도 합격점이다. 타이베이의 생활비는 서울보다 약 20~30% 저렴하며, 1인 기준 월평균 생활비는 약 850달러 수준으로 집계된다. 물가가 말레이시아나 태국처럼 극단적으로 낮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럽처럼 지갑을 긴장시키지도 않는다.
교통 인프라도 상당히 편리하다. MRT(지하철)가 도심 구석구석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유비바이크(공공자전거)가 주요 역마다 설치돼 있어 앱 하나로 자전거를 빌려 동네를 누비는 게 어렵지 않다.
다만 여름철(7~9월) 체류라면 더위와 습도는 각오해야 한다. 태풍 시즌과 겹칠 경우 일정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것. 봄(3~5월)이나 가을(10~11월)이 대만 한 달 살기의 황금 시즌으로 꼽힌다.
어느 나라를 고르든 한 달 후의 당신은 출발 전의 당신과 다를 것이다.
단골 카페 사장과 눈인사를 나누고, 마트 가는 길을 외우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오후를 경험하고 나면 여행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게 한 달 살기가 주는 진짜 선물이다.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일단 짐을 싸는 것. 나머지는 현지에서 알아서 채워진다.